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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중국 연변, 시인의 마을을 찾아서

뉴스일자: 2011년11월18일 02시39분

 

연변여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베이징, 낙양, 서안, 청해, 귀주, 해남도 등 중국 여러 곳을 다녀봤지만 정작 우리 민족의 얼이 담긴 동북지방을 여행할 기회가 없었다. 이번 연변여행은 순전히 개인적 여행이다.  취재 등 공무로 다니는 여행은 사실 여행이 아니다. 사물은 여행자의 대상이 아닌 취재라는 업무적 객체로만 존재한다. 요행히도 공식 업무를 마친 후 자투리 시간이 주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긴 하지만 해외취재는 말 그대로 취재이지 해외여행이 아니기에 여행자로서 느끼는 자유 이런 건 애초 기대하기 힘들다. 그런데 이번은 순전히 여행이기에 그런 업무적 부담은 없다.

 

연변여행은 초설회 회장님의 제안으로 기획됐다. 초설회란 전설의 소설가라는 별명을 가진  소설가 강준용을 돕고 그의 작품을 읽는 순수한 독자클럽이다. 초설회는 안동에 사는 김혜숙씨가 이끌고 있는데, 사재를 털어 작가를 돕고 있다. 일종의 메세나이기도 하고, 순수한 독서클럽이기도 하다.  초설회 회원들은 작가, 시인, 교수, 공무원, 연극인, 언론인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살아있는 작가를 후원하는 대한민국에선 거의 유일무이한 독서클럽이다.  우연한 기회에 본인도 독서클럽의 일원이 되었다. 


이번 여행은 강준용 작가가 지난해 12월 말에 펴낸 소설집 <숭선에서/ 도서출판 이유 간>의 작품무대인 두만강 상류마을 숭선을 답사하는 문학기행이다. 여행 스케줄 상 숭선 답사는 마지막 날로 배치돼 있다. 연길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의외로 많은 조선족 문인들이 마중을 나왔다. 소설가 우광훈, 평론가 김성호 등 모두 강준용 선생님을 따르는 문인들이다. 연길에서 냉면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는 아리랑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여장을 풀자마자 여행 첫날의 순서가 진행됐다.      

 


(30년여 동안 오로지 문학만을 위해 정진해온 작가 강준용. 그를 따르는 소설가 유민은 강준용에게 '전설의 소설가'란 닉네임을 붙였다.)

                                                               

여행 첫 코스는 용정 윤동주 생가 방문과 연길 시장 구경. 연길은 연변조선족자치구의 중심도시다. 연길은 주변에 화룡시, 도문시, 용정시를 아우르는 행정과 산업, 교육의 중심도시다. 북한을 접하고 있는 탓에 조선족이 유달리 많다. 

여행객은 해란강이 휘감고 지나는 용정시를 지나 명동촌으로 향했다. 안내를 맡은 조선족 문인은 멀리 산 위로 일송정을 가리켰다. “일송정과 푸른 솔, 해란강과 용주사...”말달리던 선구자들이 지나간 익숙한 지명들... 이곳은 우리 현대사의 모든 종단면을 담고있는 박물관  격이다. 

조선족 문인들은 서울에서 느끼지 못하는 찐한 정을 갖고 있었다. 그분들을 보면 서울에서 우리들이 얼마나 사무적으로 대인관계를 하는지 금방 비교됐다. 술자리 건배 제의도 정이 넘친다. 상대방 술잔이 조금이라도 비워져 있다면 이내 첨잔으로 정을 듬뿍 담아준다.  서울에서 맛보지 못하는 인정이다. 

 

콘크리트 건물 사이로 난 아스팔트 가로에 외제 브랜드의 고급 승용차가 달리고, 시골로 향하는 길옆으론 둥근 초가집과 구릿빛 아이들과 촌로의 허름한 행색이 스쳐 지나간다. 용정 일대엔 비교적 초가집이 많이 남아 있었다. 이곳 초가집은 크게 두 가지 형태다. 각진 스타일의 초가는 한족이나 만주족의 집이고, 둥그런 곡선의 초가는 조선족의 집이다.  복사꽃 살구꽃 피는 봄철이거나 박꽃 피는 늦여름 혹은 고추잠자리 하늘을 나는 가을이면 풍경은 더 없이 좋을 듯하다. 우리에겐 사라져버린 고향의 서정이 중국 땅에 살아남아 향수를 자극했다. 그러나 이런 풍경도 개발과 함께 진행된 이농현상으로 머잖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용정에서 북한 방향으로 아스팔트 길 이십 여분을 달리니 명동촌이 나왔다. 국경 너머 땅이지만 이국 같지 않다. 야트막한 산이 있고, 마을 앞으로 시내가 흐르는 아늑한 마을이다.  



큰길 옆 윤동주 생가를 알리는 대형 표지석이 그가 이곳에서 얼마나 칭송받고  있는지 짐작케 한다. 윤 시인의 집은 시인의 조부가 1900년에 지은 10칸짜리 전통 기와집이었는데  지금은 복원된 것이다. 시인은 1917년 이 집에서 태어나서 용정에 있는 은진중학교 입학 할 때까지 15살 동안 여기서 살았다고 한다.  지금 집은 1994년 복원한 것이다.

 

생가 마루에 걸터앉아 시인을 생각해본다. 집 앞엔 높다란 나무에 걸린 잎새가 바람에 사각거리고, 뭍 별들이 바람에 스치우는 시인의 고향마을에서 민족의 현실 앞에 괴로워했던 그 시절 청년 지식인의 고뇌에 빠져본다.  빛도 희망도 없던 암울한 식민지 시절, 시인으로, 지식인으로 생존해야 하는 청춘기의 시인의 고뇌를 생각해본다.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고자  한 시인의 맑은 정신이 '서시'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복원한 생가 옆으로 명동소학교가 있다.  칠판엔 1927년 봄 그 시절 명동소학교 3학년 1반 교실 풍경이 낙서되어 있다. 금주의 할 일, 손발 깨끗이 씻자.  청소당번 문익환,  구구단 못 외는 사람 김옥분,  지각생 윤동주,  좋은 일 많이 하는 사람 송몽규...  당시 급우들 명단이 적혀있다. 

 

문익환 목사가 간도출신이란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과문한 탓에 윤동주 시인과 같은 마을 동창생인 줄은 알지 못했다.  하나 걸출한 인물 청년문사 송몽규가 있다. 송몽규는 윤동주의 고종사촌이다. 명동소학교 시절 윤동주와 함께 <새명동>이라는 잡지를 만들면서 문학 소년의 꿈을 키웠다. 둘은 명동소학교를 졸업 후 연희전문 문과에도 나란히 입학했다. 연희전문 시절 송몽규는 문우회 문예부장으로 잡지 <문우>를 펴내며 문학 활동을 했다. 송몽규는 교또제대 학생이던 1943년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되어 윤동주와 함께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됐다. 감옥에서 일제의 생체실험대상으로 고통 속에 시달리다 해방을 바로 앞두고 옥사했다.  친구 윤동주가 옥사한지 23일 만인 1945년 3월 11일 숨을 거뒀다.

 

윤동주 시인의 고향집 건너편 나무판자를 잇댄 담장 너머로 송몽규의 생가가 있다.  송몽규 생가는 친구 윤동주 생가에 비해 허술했다. 비록 하얀 회벽을 칠했지만, 생가는 찾는 이가 별로 없고 처연하다. 몇 발치 사이를 두고 어린시절을 함께 한 송몽규, 윤동주, 문익환.  세 분 모두 민족이 낳은 인재들이요, 민족을 위해 몸 바친 지사들이다.   

 

일본 도지사대 재학시절의 윤동주, 앞줄 가운데
일본 도지사대 재학시절의 윤동주, 앞줄 가운데

  
일본 릿교대 1학년 재학시절, 1학년 여름방학 때 귀향해서.
일본 릿교대 1학년 재학시절, 1학년 여름방학 때 귀향해서.

    

은진중학교 재학시절, 뒷줄 가운데가 문익환 목사, 그 오른쪽이 윤동주
은진중학교 재학시절, 뒷줄 가운데가 문익환 목사, 그 오른쪽이 윤동주
 

용정은 이 밖에도 많은 지사들을 배출한 곳이다. 일제시절 영화 아리랑으로 유명한 나운규도 이곳 명동학교 출신이고,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로 활동한 이상설 또한 간도 최초의 신교육기관인 서진서숙을 용정에 세웠다.

간도의 다른 지역보다 용정에서 유달리 선구적 인물을 많이 배출한 것은 교육과 종교의 영향이 크다.  윤동주 시인의 생가 옆에는 간도 최초의 교회인 명동촌 교회 건물이 있다. 윤동주, 문익환, 송몽규 모두 성탄절이나 학기말이면 이 교회에서 연극을 공연했다고 한다. 명동촌교회는 지금은 역사관으로 각종 사진들을 전시해놓고  시인의 마을을 찾는 방문객들을 맞고 있다. 

시인의 마을 명동촌은 제법 규모 있던 마을인데도 개 울음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적막하다. 사람이 다 떠난 탓일까. 한 때 이 마을은 일대에 이름난 마을로 수많은 조선인들이 모여 들었다. 일제 시절 한 때는 소학부에 280명, 중학부에 160명 등 함경도, 동북만주, 멀리 러시아 등지에서 몰려온 수백 명의 학생들로 왁자지껄했다던 마을이었다는데, 이제 그 자취를 찾아 여행객들이 마을을 반기니 그나마 위안을 삼아야 하는 것일까. 

 

노을 진 하늘도, 초여름의 싱그러운 바람결과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도 채 감상하지 못하고 명동촌을 떠난다. 내 생애 다음 언젠가 시인의 집 앞마루에 다시 걸터앉아 명동촌의 하늘과, 바람과, 밤하늘의 별을 보며 시를 나직이 암송하고 싶다.  

    

 

[출처] 연변기행 - 시인의 마을을 찾아서|작성자 김피디 (KBS PD/패션저널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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